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비 찰튼 (문단 편집) == 은퇴 이후 == 은퇴 후 찰튼은 당시 디비전 2 소속이던 과거의 명문 프레스턴 노스엔드 감독으로 취임한다. 그러나 아일랜드 국대 감독을 맡아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은 형과 달리 선수로서 시대를 풍미했던 그도 감독으로서는 초짜에 불과했다. 1973-74 시즌, 프레스턴은 디비전 3로 강등되고 만다[* 사실 찰튼의 능력 부족 탓만 할 수는 없다. 그 전 몇 시즌 동안 프레스턴은 늘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었다.]. 다음 시즌 37살의 나이로 선수로 복귀[* 성적은 45경기 10득점.]하면서까지 팀을 승격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팀은 중상위권에 위치하는 데에 그쳤고, 찰튼은 1975-76 시즌 초 팀의 핵심 존 버드를 뉴캐슬에 팔아치운 구단의 처사에 항의하는 뜻에서 감독직을 사임한다. 그 후 아일랜드 리그의 강호 워터포드 유나이티드에서 1년 간 뛴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[* 이후에도 남아프리카 쪽에서 뛰긴 했지만 공식적인 기록 집계가 불가능하니…] 이후에는 [[위건 애슬레틱 FC|위건 애슬래틱]]에서 이사직을 역임하다가 1983년에 잠시 감독대행을 맡기도 했으며, 1984년에는 [[맷 버스비]]가 사임한 이후 보드진에 상징적인 인물을 필요로 하던 맨유의 부름을 받아 현재까지 기술 이사직을 맡고 있다. 참고로 맨유 홈경기 중계에서 카메라가 종종 잡아주는 [[실크햇|톱 햇]] 모자를 쓴 노신사가 바로 이 사람이다. 2016년 4월 2일, [[에버튼 FC|에버튼]]과의 [[프리미어 리그]] 경기에서 [[올드 트래포드]] 구장 남쪽 스탠드의 명칭이 바비 찰튼 경 스탠드(Sir Bobby Charlton Stand)로 개명되었으며, 2017년 10월,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훈련장의 명칭이 바비 찰튼 경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된다. 이에 [[가레스 사우스게이트]]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자랑스럽다고 밝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